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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나 님


가시나, 인형 같네.

칭찬도 흉도 아닌 감상이었다. 열다섯의 나오야는 네다섯 즈음 되었을 법한 하토리를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무너지기 직전의 쿠라모치 가는 절박했다. 발 디딜 곳 하나 없던 하토리의 모친은 어린 딸을 데리고 기꺼이 젠인 가문에 발을 들였다. 친구였던 젠인 씨의 벗이자, 때 맞추어 누군가의 짝이 되어야만 하는 하토리의 보호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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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리의 가장 먼 기억은 유독 옅었다. 한겨울이면 뼛속까지 얼어붙는 듯한 추위를 겪어내던 곳. 먼 동쪽 삿포로 어느 저택에서의 겨울은 고작 세 번뿐이었으니까. 검은 나무로 된 계단을 한 칸씩 밟아 내려오며 어린 하토리는 어머니의 손을 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하토리에게 한겨울의 삿포로는 집이었다. 하루를 온전히 쏟아 가장 먼 서쪽으로 향해 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인사하렴, 하토리. 엄마의 친구인 젠인 씨야.”

흰 피부에 어딘가 지친 듯한 얼굴의 젠인 씨는 반가운 낯을 흉내내고 있었다.

“정말 잘 됐어, 하나코. 잘 된 거야.”

교토에 도착한 첫날, 더는 춥지 않은 잠자리에서 하토리는 많은 것을 들었다. 하토리, 이제 어려운 건 없을 거야. 모두가 하토리를 공주님처럼 대해 줄 거야. 하토리는 그냥, 잘 자라며 기다리기만 하면 돼. 기다리기만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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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조금 다른 이 세계를 이루는 것들은 단순하다. 적당한 모멸감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들, 위계, 그리고 명분. 하토리에게 젠인 가에 발을 들여 조용히 지낼 명분이 충분했다. 패망한 쿠라모치 가의 유일한 딸을 보호하는 젠인 가. 주술계에서 관용은 그닥 큰 힘이 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존속을 위해서라면 우습게 볼 것은 아니었으므로.

또 하나는 적당한 짝. 주술계의 일원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주력과, 가문에 맞먹지 않을 정도의 적당히 여린 존재. 하토리는 존재 자체로 젠인 가에게 좋은 명분이 되어주었다. 당주는 하토리를 실제로 꽤 아끼는 듯 보였다. 어리지만 명확했다. 술식도 확실했으며 성격 또한 조용하지만 강단이 있었다. 그럴듯한 여성 주술사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던 젠인 가문에 큰 존재가 될 것 같다는 것이 그 친절의 이유였지만 하토리에게 그런 것들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주어지는 친절이 영원할 리 없다. 분명한 조건이 걸린 애정이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겁먹은 채 위태로운 생활의 끝을 계산하겠지만 하토리는 달랐다. 어차피 끝날 거여도, 끝내지 못할 거여도 똑같잖아. 내가 굳이 조심해야 해?

쌍둥이의 모친은 가끔 본인의 자식들보다도 하토리를 아끼는 듯한 말을 했다. 물론 행동으로 보여주는 법은 거의 없었지만.

그러니 하토리는 연약한 이들의 희망이었다. 가진 것 없는 하토리의 어머니는 하토리 덕분에 험한 일 같은 것들을 직접 보지 않고 쉽게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 쌍둥이의 모친인 젠인 씨는 자신에게서 이어진 연이라는 명분 하나로 자신의 결함과도 같은 딸로 인한 열등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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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머리칼과 더 짙은 눈동자. 빛이라도 찾으려면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얼굴은 영락없이 인형과도 같았다. 나오야는 겨우 제 다리 근처에 올 것만 같은 작은 하토리를 보며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차기 당주의 차기 아내. 얼핏 들어서는 웃음 나올 이야기였지만 나오야는 고압적이면서도 신중했다. 결함투성이인 이 집안의 여성들 속에서 완벽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장기 내내 큰 접점은 없었다. 자연히 멀었던 것도 있고, 가문에서는 둘을 의식적으로 붙여 두지 않으려 했다. 나오야는 차기 당주로 이런저런 교육 비슷한 것들을 받거나 모임을 준비하느라 바빴고, 사실 나오야의 부재가 아니더라도 하토리는 누구와도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오야는 하토리의 소식을 타인에게서 전해 듣는 것이 전부였다.


하토리의 일과는 단순했다. 아니, 목표를 향한 생활이랄까. 부족함 없는 당주의 아내가 될 것. 사용인들과 어머니, 그리고 젠인 씨를 제외한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을 것. 술식을 바르게 사용할 것. 달에 한 번은 현 당주를 만나 식사를 하며 근황을 말하는 것. 안타깝게도 순조로움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지만 하토리는 그럭저럭 해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정말 어디까지나, 그럭저럭. 하토리는 늘 버릇처럼 말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야. 소란스럽게 이목을 끄는 편은 아니었지만 늘 사용인들과 젠인 씨, 그리고 어머니의 피를 말렸다.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그것 역시 숨기지 않는다. 작게는 옷부터 크게는 태도까지. 당주와의 식사 자리에서 대놓고 불만을 토로한 어느 날에는 모두가 숨을 삼켰더랬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전해들은 나오야는 웃음을 터뜨렸다. 웃기네, 그 딸내미. 가가 그런 말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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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야는 문득 궁금해졌다. 자그마치 열 살이 어린 제 색시가 될 여자가 당장 무얼 하는지, 또 얼마나 자라났는지. 자주 생각하는 일은 아니었으므로 한 번 꽂히면 골몰하게 되는 주제였다. 당주라는 사람에게 아내가 얼마나 형식적인 것인지, 또 자신에게 여자란 얼마나 쉽고 가벼운 것인지 알고 있었기에 이리 떠올리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특별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잊기 어려운 탓이겠지. 겪을 수도 없는 사춘기를 지나던 그의 눈에 띈 어린아이. 어머니 손을 잡지도 않고 서서 자신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던….

혼인에는 조건이 붙었다. 하토리가 열여덟이 된다면, 무사히 열여덟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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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벌써 열여덟이가?”

나오야는 다시 한번 하토리를 내려다본다. 몇 년만에 보는 하토리이지만 바로 알 수 있었다. 십여 년 전보다는 확연히 달라진 차이에 웃음이 절로 난다. 제 눈에 띄었으니 열여덟이겠거니 하는 의미와 함께 왜 벌써 제 눈에 띄었냐는 도발 내지는 궁금증이었다. 그 무렵 하토리는 제 운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약속된 열여덟을 두 달 남긴 시점이었다. 하토리는 대놓고 금기를 어기기 시작했다.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자꾸만 벌였다. 나오야의 눈에 띄는 것, 집안에서 들어야 하는 수업에 불참하는 것. 젠인 씨와 하토리의 어머니는 애가 닳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잔소리라도 했다 치면 토라져서는 밥을 먹지 않거나 나오야와 담판을 짓고 집을 나가겠다며 이름을 들먹이기 바빴다.

“그렇게 보이세요?”

그의 이름을 계속 들먹인 것 치고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하토리였다. 나오야는 웃으며 대꾸했다.

“자꾸 내 이름 팔아가 토낀다데?”

“그깟 이름 좀 판다고 닳나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나오야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맹랑한 것까지는 분명 좋았다. 어른들이나 사용인들에게 그렇게 굴 때는. 하지만 자신에게 이런 대우라니. 나오야에게 하토리는 기대되는 유흥거리이기도 했지만 정확히는 그의 소유였다. 유년부터 성장기까지 모두 자신의 이름에 묶여 살아가야 하는 존재. 아주 약간의 압박감과 고통이 있어도 좋다. 자신의 소유이니 자신에 의해 생기는 그런 것들 정도는 우스웠으니까. 그래야 하는 존재가, 잊힐 즈음에 자신이 이름 한 번 불러주어야 의미를 가져야 하는 존재가….

“나와 주실래요?”

자신을 우습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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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뒤틀리는 것을 겨우 참고 하토리의 뒤를 밟는다. 지금 밟아 놓지 않는 것은 튀어올라도 해가 되지 않을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디 가는데? 느린 걸음으로 하토리의 종종걸음을 우습게 따라잡는다. 저보다 세 걸음 앞서 걸으며 대꾸조차 하지 않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걷는다.

말도 없이 하토리가 향한 곳은 가문의 주구들을 보관하는 주구 창고였다. 저택의 서쪽 끝에서 갇혀 지내다시피 했을 하토리이지만 어째서인지 길을 전부 알고 있었다. 망설임 없는 걸음으로 익숙하게 문고리를 붙잡는다. 작은 탄성과 함께. 아, 잠겼네. 그제서야 내내 모른척하던 나오야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열쇠 있어요?”

“없겠나, 내가.”

그러면 얼른 열지.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하토리의 고갯짓 한 번에 나오야는 뜻을 알 수 있었다. 헛웃음 치면서도 나오야는 자신도 모르게 문을 열어 주고 있었다.

“뭐, 어디다 쓰려고?”

가벼운 물음에 역시 하토리는 건조하게 답했다. 퇴치하는 데에 쓰겠죠. 분명 나오야가 듣고 싶은 대답은 그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부러 그렇게 답했다. 집안의 모든 사람들은 나오야가 듣고 싶어하는 대답만 하곤 했는데, 익숙하지 않은 대우에 나오야는 왜인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하, 참. 가시나… 맹랑하네.

“안사람 되면 쓸 일이나 있나? 뭘 이런 구경하고….”

“아……. 안사람이요.”

이번에는 하토리가 들으라는 듯 살짝 소리내어 웃는다. 순식간에 공기가 얼어붙었지만 하토리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오히려 불을 붙이듯 다시 입을 열었다. 당연한 것처럼 말씀하시네.

“당연한 거 아이가? 안 당연하다는 것처럼 말하는 니가 이상한 건데.”

웃음기가 점점 사라진다. 하토리는 이 찰나를 녹일 생각이 없다. 슬쩍 뒤를 돌아 결국 부수고야 만다.

“본 적 있으세요?”

다섯 살이었죠, 제가 이 집에 어머니 손 잡고 들어왔던 게. 글도 제대로 읽고 쓸 줄 모르던 여자애가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 와서, 누군가의 신부가 된다는 소리만 듣고 자라났어요. 그냥 자라나지는 않았다고 할게요. 평범하게 말하기에는 좀 억울하잖아요, 제가.

도련님은 그동안 편히 자라나셨겠네요. 열다섯 나이에 열 살이나 어린 신부 구경하러 오시고, 그 이후에는… 열여덟이 되셔서 당주 모임 가는 길에 한 번. 그리고 스무 살이 되셨을 때였나요. 고작 열 살 된 애한테 여자 티가 나기 시작한다면서 웃고 지나가셨죠. 그렇게 두 번. 그리고 스물다섯 되셨을 때, 아버님이랑 식사 중에 취하신 상태로 여자 이름 부르면서 들어와 넘어지셨었는데. 칸나 쨩. 아직도 그리우세요? 여자는 가축과도 같아서 몇 번이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느니 하시던 분이. 제 어머니와 젠인 씨에게는 그렇게 가볍고 무례하게 행동하시던 분이….

어느 순간부터는요, 이해하고 싶지 않아졌어요. 아, 이건 설명이 좀 필요하려나. 딱히 처음부터 이해한 적은 없는데요, 언젠가부터 이해라는 걸 해 보고 싶었었어요. 그마저도 이틀 정도, 그러니까 당신에게는 몇백 번, 몇천 번 중에 한 번이었을 그 행동을 마침 보고야 말았을 때니까요.

그러니 오늘이 처음이네요. 제대로 제 눈을 보고 사람처럼 대해 주신 날이요. 그마저도 제가 앞서 걸으니 강아지처럼 따라오시느라 바빴던 거지만요. 오늘이 오기 전에요, 한 번이라도 본 적 있으세요? 제가 자라는 모습이요. 어린 나이에 팔려오듯 와서 겪었을 순간에 한 번이라도 관심 가진 적은요? 목숨 걸고 도련님 이름 입에 올리던 건 전부 부딪히고 싶어서였어요. 애정 바라고 하는 유치한 행동이 아니라요, 나는 도련님 얼굴을 제대로 봐야겠어서. 누군가는 도련님이 만든 그림자 안에서 몇 번이고 선을 재고 뛰어넘을 준비를 하고 있었을 건데, 그 시간을 본 적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좀 우스워서요.”

그러니 도련님, 지금처럼 제 뒤나 쫓아오실 것 아니면 늘 그러셨던 것처럼 관심 끄세요. 나오야는 생전 맛본 적 없는 열감에 입꼬리만 비틀었다. 무어라 내뱉기도 전에 하토리는 창고 밖을 나가 사라졌다. 이번에도 나오야가 본 것은 그녀의 뒷모습뿐. 그녀 말대로 제대로 마주하고 나서 본 것은, 전부 그녀의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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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리가 사라졌다. 열여덟이 되어 공식적으로 당주와의 혼사를 이야기하기 정확히 이틀 전의 일이다. 사건 후에 나오야는 주기적으로 하토리의 상태에 대해 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지루한 답변뿐이었다. 아가씨는 잘 지내십니다. 혼인을 기대하시는 건지 전과는 다르게 많이 차분해지셨어요. 따위의, 나오야 같은 사람에게는 일말의 흥미도 주지 않는 대답.

그렇게 차분하고 평화롭게 이어질 것 같던 혼인에 차도가 생긴 것이다. 차도라고 말하기에는 큰 사건이었지만 젠인 가의 분위기는 어째서인지 혼란보다는 분노에 가까운 분위기가 일기 시작했다. 고죠 사토루의 등장으로 모두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젠인 가의 역할은 무거웠다. 계속해서 상층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모든 것이 완벽해야만 했다. 그것이 겉모습뿐이더라도.

하지만 하토리는 어느 것 하나 무너뜨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부재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망가뜨렸다. 쿠라모치 가문의 유일한 생득 술식 사용자를 보호하고 있었다는 명분과 나오야가 안정된 당주가 되고 가문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까지도 전부. 엉망이 된 젠인 가에서는 종일 호통과 비명이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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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탁. 나무 선반에 손톱 부딪히는 소리가 사용인의 어깨를 짓누른다. 당주도, 가문의 여자들도 모두 얼굴을 붉히던 그때였지만 온전한 제 것을 가장 크게 잃은 나오야는 어딘지 모르게 단정한 얼굴이었다.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며 영겁의 시간을 제 것인 것처럼 굴던 나오야가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하루토, 그거 아나? 서쪽 별채에서 모시던, 너그들이 그렇게 속닥거리던 그 아가씨한테는 말이야. 주구 같은 건 장난감이나 다름없거든.

너그들처럼 천한 사람들은 못 느끼는 기척이 있다, 내한테는. 그날도, 아니 처음 봤을 때도 느껴졌었거든. 저 딸내미 보통내기가 아인데? 하는 그런 촉. 내가 입밖으로 나불대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내 거라서 그런 건데. 새싹부터 그 아가 가진 처음이랑 마지막까지 전부. 하하, 니 설마 이상한 생각 하나. 새끼, 역겹구로.

하튼, 마. 그런 게 있다이가. 그런데 왜 그 딸내미가 내 이름 못 불러서 안달이었는지, 아무리 뒤져봐도 눈동자에 사랑 같은 건 쥐뿔도 없이 멋대로 굴던 아가 내를 그래 찾았는지. 그때 내가 듣고 웃고 있었을 게 아니었는데, 그제?

가가 이 집 나가서 뭐 하고 있을 것 같노? 뭐 할라 그래 튀어가 사라졌을까? 시집오기 싫어서? 하루토, 내는 있지. 천리를 본다. 괴물이랑 결혼하기 싫어가 엉엉 우는 공주님일 리가 없지, 우리 아가씨는. 내 그때 그 년 뒷모습 보고 딱 느낀 기 있다.

“자고로 말이제, 세 걸음 뒤에서 걸을 줄 모르는 여자는-“

나오야는 마지막 말을 고르며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그때와 같이 공기가 얼어붙는다. 무언가 즐거운 상상이라도 하듯 천진한 얼굴로, 이번에는 나오야가 직접 호흡 없던 찰나를 부수어 내며 터뜨린다. 등에 칼 꽂히가 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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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리는 교토를 벗어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지만, 굳이 그런 쪽을 택하지는 않았다. 기껏 나왔는데 평범한 삶을 사는 것도 웃기지. 무엇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아주 가끔, 주령을 퇴치하러 외진 곳에 다니는 미지근한 삶을 유지했다.

그날은 조금 달랐다. 다르다기보다는 기시감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처음 오는 폐교였지만 날이 추운 탓인지 기억에서도 거의 지워진 고향 생각이 나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토리는 애써 잡스러운 감정을 지웠다. 하나, 둘. 어렵지 않게 손짓 한두 번에 사라지는 주령들을 보며 고요한 복도를 걸어나갔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차라리 남김없이 주령이 되었다면. 지옥과도 같은 그곳에서 자신은 귀하게 자랐지만 내쳐졌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연민이나 동정 같은 것들은 아니었다. 불합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었다. 하토리에게는 가장 간단한 지론이 있었다. 좋고 싫은 것에 있어서는 자기 자신만을 믿는 것. 그때의 자신은 그런 것들이 싫었으니 분명 잘못된 것들이었겠지. 그리고 나오야의 얼굴을 떠올린다. 가장 늦게 떠오르는 걸 보면, 아마도….

“뭐 그래 무섭다고 뽈뽈 도망치노? 찾다가 숨 넘어가는 줄 알았데이.“

목적이 아주 분명해서 섬찟해지는 등장. 아, 이 사람. 나를 죽이러 왔구나. 제 감정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자신이 나오야와 조금은 비슷한 것 같다고, 젠인 가를 떠나며 생각했던 적이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싫었던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 그리고 그 끝이 지독하게 잔혹한 것. 젠인 가는 그런 것들을 길러내는 곳이던가. 하토리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어디서 등장한 거야, 묻고 싶지만 묻고 싶지 않은 질문. 궁금하면서도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얼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여는 나오야를, 하토리는 말없이 바라본다.

“이제는 열여덟 됐겠네? 우리 아가씨.”


나오야는 비릿한 웃음과 함께 손을 뻗었다. 주력으로 휩싸인 팔이 일렁이듯 빛난다. 시야에 잡히기도 전 작은 주령 하나를 빠르게 쳐내고 다시금 시선을 하토리에게 고정한다. 당황한 기색 하나 없는 얼굴에도 굴하지 않고 한 걸음씩 하토리에게 가까워진다. 고마 이제는 시집 와야지, 내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