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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구미가 늘 달래듯 어린아이 취급해 주는 게 좋았던 것도 잠시 정체되어 있는 나를 등지고 앞서나가는 너를 보며 조바심이 들었어 너의 등 뒤에 숨어 멈춰 있고 싶었던 게 아니야 나란히 걷고 싶었을 뿐 안주하지 말고 나아가자 생각하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아 골머리 앓고 있으면 너는 마치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다가와 손을 잡고 이끌어 주지 또 쓸데없는 생각 하지 다정함을 숨기려 애쓴 듯한 한마디도 잊지 않아


메구미는 어쩐지 내 이름을 부르는 일이 드물 것 같아 그런 점이 내심 서운하지만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이기도 하고 또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하니까! 야, 너, 어이 이 세 개가 나를 지칭할 때의 호칭이고 내가 없는 자리에서는 걔 또는 그 여자애 정도겠어 나는 메구미를 부를 때 그런 정 없는 호칭 같은 거 입에 담아 본 적도 없는데 말이야 매번 메구미가~ 메구미는~ 하면서 이름 안 부르면 죽는 병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메구미만 애타게 불러대는 내 마음은 모르고



입 맞추기 직전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되었을 때 눈동자에 서로를 담는 아이컨택은 우리만의 키스 루틴이야 나름의 여유가 생긴 나는 애가 탄 메구미를 보며 키스해 줄까? 장난스럽게 물어 장난 치지 말고 다급한 목소리로 대답해 오는 모습이 귀여워 바로 입술을 포개면 기다렸다는 듯 혀를 옭아매 오는 메구미 메구미의 첫 키스는 나의 소유였는데 예상했던 대로 키스에도 재능이 있어 멋대로 오해해 버리는 바람에 대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네


메구미가 나와 함께 있을 때 가장 자주 하는 생각이라면 이게 아닌데... 아닐까 생각해 보았던 적이 있어 어쩐지 나와 함께일 때면 뜻대로 되는 게 없고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감지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거야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응석을 받아 주게 되는 것처럼, 울음 섞인 어리광에 몸이 굳어 버리는 것처럼 결국 마지막에는 내 뜻대로 이루어 주고 나서야 머릿속이 엉망이 되어 버리는 메구미 언제까지고 이대로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 지 어연 삼 년째 변할 수 없음을 자각할 때도 되었다고 생각해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주 당연하게도 메구미의 최후를 사망으로 상정하고 그에 맞추어 정했던 서사나 설정이 많아서 다시 정정하느라 애를 좀 먹었지만 메구미와 함께하는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 남들과는 다르고 특별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왔던 것들이 무색하게 너무나 흔해 빠진 진부한 마지막을 써 내려가게 됐지만 고전 시절 우리의 아이덴티티는 미완성이었으니 진부하고 평범하더라도 평생의 약속으로 완성된 모습이 우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결말이지 않을까 생각한 거야


자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저주를 볼 수 있는 눈 따위 없는 셈 치고 살아갈 수 있었을 그 여자아이가 자신을 만나서 모든 것을 내던지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 가여워 더는 외면하는 법조차 알 수 없게 된 메구미 사랑받을 줄 알고 사랑하는 법을 알며 무던히 살아가는 것에 익숙한 아이니까 나를 만나지 않고 원하던 대로 평범한 삶을 영위했다면 이렇게까지 괴로울 일은 없었을 텐데 하토리가 주술계에 발을 들인 것은 오로지 하토리 스스로의 선택이었음에도 그 계기가 후시구로 메구미 자신임을 상기할 때마다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거야 늘 어린아이처럼 굴지만 실은 뭐든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알아 누구보다 신뢰하는 소중한 나의 소꿉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