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ris

내 손은 굳은살 콕콕 박인 메구미의 손에 비해 흉터 하나 없이 깔끔한 모양새를 하고 있어 꾸준한 관리 덕도 있겠지만 궂은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메구미가 하는 유일한 애정 표현이 있다면 나의 손을 만지작거리는 것인데 손가락을 하나하나 만질 때마다 여린 살에 단단하고 거친 굳은살의 감촉이 맞닿아 느껴져 사람의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일대기를 알 수 있다고 했어 나는 너의 손이 여리고 또 여리기만을 바라는데 날이 갈수록 거칠어지는 너의 손을 보면 문득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아


있지 메구미 우리 앞으로 몇 년을 더 함께할 수 있을까 고요한 새벽 침대에 나란히 누워 손가락을 천천히 얽고 물기 가득 섞인 목소리로 물으면 너는 나의 손을 꼭 맞잡아 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해 메구미가 치명상을 입고 돌아올 때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결국에는 발끝까지 추락하는 기분이 들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으니까 만약 나에게 누군가를 살려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사람을 수천 수억 명 구해낼 수 있는 최강의 주술사가 아닌 주저없이 후시구로 메구미 너를 살려낼 선택을 하고 말 거라고 하지만 인간에게 그런 능력 따위 생길 리 없으니까 너를 살려내는 것 대신 너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나아갈게 그러니까 나의 목숨은 너의 것이야 전부를 내어줄 테니까


메구미가 모르는 사이 메구미의 것에 내 흔적을 가득 남겨 놓는 것은 나의 오랜 취미 이를테면 휴일 낮 메구미의 방에서 함께 뒹굴거리다가 메구미 혼자 잠들어 버렸을 때 몰래 휴대폰에 짧은 메모를 남기고 간다거나 내 사진을 배경 화면으로 설정해 두고 간다거나! 일어나자마자 나를 떠올려 줬으면 하니까 네가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곳에 내 흔적을 잔뜩 남기기 시작했어 내가 남긴 흔적이라면 절대 지우지 않는 네가 좋아 메모장을 켰을 때 내가 지금껏 남겨 두었던 흔적들이 단 하나도 지워지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와 버려서


상자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해 허둥대기 일쑤인 나를 늘상 옆에서 챙겨 주는 다정한 메구미가 좋아 고죠 선생님께 주구를 옮겨 달라는 부탁을 받아 상자에 주구를 한가득 담아 들어 올려 보고 역시나 내 힘으로는 역부족인 게 느껴져 주구를 하나둘 빼내고 있으면 메구미가 다가와 빼놓은 주구들을 도로 집어넣고 가볍게 상자를 안아 올려 상자 앞에 쪼그려 앉은 나를 보고는 구두 신고 그렇게 앉지 말라니까 하고 잔소리하는 것도 잊지 않고! 벌떡 일어나다가 중심 잃고 휘청이면 예상했다는 듯 무심하게 나의 팔 잡고 중심을 잡아 주는 것까지도 마치 나를 전부 알고 있다는 듯 구는 건 반칙이잖아


내 몸에 아주 작은 생채기라도 났다 하면 곧바로 표정이 일그러지는 너 긁힌 자국 따위에 엄살 부리며 메구미 나 여기 아파... 🥺 하고 되도 않는 어리광 부려대도 내가 다쳤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인 너는 무작정 구급상자를 뒤적여 손대지 말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해 오는 네 다급한 목소리가 괜스레 기분 좋게 느껴져서 자꾸만 어리광 부리고 싶어지거든 내 몸에 생긴 거라면 조그마하게 긁힌 자국도 네 눈에는 아주 커다란 흉터 정도로 인식되는 걸까 약을 바르고 밴드까지 살뜰히 붙여 주는 투박하지만 조심스러운 손길이 좋아 조금 더 다쳐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순간